宋輝
2019-06-16 17:54:59 출처:cri
편집:宋輝

아들과 아버지의 마음, 집과 나라의 정

"중훈을 찾아갑시다."

그때 그 당시 서북의 간부들과 군중들은 입버릇처럼 이 말을 외웠습니다. 이 말은 인민군중 속에서 습중훈이 차지하는 무게를 말해줍니다.

"나는 나를 버릴지언정 인민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피코 이탈리아 의장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습근평 주석은 정에 넘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이 말은 인민군중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습중훈으로부터 습근평에 이르기까지 인민을 위한 정이 따뜻합니다. 본보기의 힘은 위대합니다. 불변의 초심은 일맥상통하며 일상 곳곳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당을 향한 한 마음, 산과 같은 신념]

습중훈: "인민은 바로 강산이며 강산은 바로 인민입니다."
습근평: "중국공산당인의 초심과 사명은 바로 중국인민을 위해 행복을 도모하고 중화민족을 위해 부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晚年習仲勳

(사진1: 만년의 습중훈)

습중훈의 전설적인 일생은 파란곡절로 역어졌습니다. 길이 순조롭든지 아니면 역경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신앙을 개변하지 않았으며 당과 인민에 대한 충성은 확고부동했으며 조직에 대한 신뢰는 변치 않았습니다.

"전투의 일생, 즐거움의 일생이다. 날마다 분투하고 날마다 즐거우리" 이것은 습중훈이 만년에 자기 일생을 총화한 것입니다.

전반 생애에서 그는 "서북의 사업을 잘 하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육순 나이가 지나서도 그는 또 임무를 받고 광동에 가서 "조국의 남대문을 파수"했으며 시시각각 행동으로 자기의 초심을 실행했습니다. "공산당원으로서 어찌 공산당을 위해 더 많이 사업하는 것을 행복과 즐거움으로 느끼지 않겠습니까?"

圖片默認標題_fororder_2017年10月31日,在上海中共一大會址紀念館,習近平帶領其他中共中央政治局常委同志一起重溫入黨誓詞。

(사진2: 2017년 10월 31일, 상해 중공 제1차 대회 유적지 기념관. 습근평 주석이 기타 중공중앙 정치국 상무위원 성원들을 인솔하여 입당선서를 하고 있다.)

습근평 주석은 일찍 부친 습중훈에게 보낸 서한에 이렇게 썼습니다.  (설사 역경에 처하더라도) "아버지는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여전히 확고부동하게 지켰으며 우리의 당이 위대하고 정확하며 영광스럽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의 언행은 우리에게 올바른 전진의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부친 세대의 수중에서 계주봉을 받았습니다.  중국공산당인은 "중국인민을 위해 행복을 도모하고 중화민족을 위해 부흥을 도모하는" 사명을 두 어깨에 질머졌습니다. 초심을 잊지 않고 꾸준히 전진합니다.

중국공산당 제19차 대표대회가 페막된 얼마 후 습근평 주석은 새로운 한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인솔하여 상해, 가흥에 가서 "초심의 방문"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부동한 장소에서 광범위한 당원 간부가 초심을 잊지 말고 확고히 인민을 위해 행복을 도모할 것을 격려했습니다.

하나 또 하나의 견실한 발자국은 위대한 사업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잇고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인민을 위하며 달갑게 공복으로 되자]

습중훈: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은 바로 부모에 대한 제일 큰 효도이다."
습근평: "나는 나를 버릴지언정 인민을 저버리지 않겠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1960年6月,習仲勳帶領中央國家機關幹部到北京郊區紅星人民公社和社員一起收割小麥。

(사진3: 1960년 6월, 습중훈은 중앙 국가기관 간부들을 인솔하여 베이징 시교의 홍성인민공사에 가서 사원들과 함께 밀 가을을 했다.)

"저는 농민의 아들입니다." 이것은 습중훈이 집에서 늘 하던 말입니다.

모든 기회를 빌어 군중과 연계하는 것은 "군중속에서 걸어나온 이 군중수령"의 일관한 습관입니다.

농민의 눈에 습중훈은 밀짚모자를 쓰고 밀집부채를 저으며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흙탕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는 수더분한 형이요, 아저씨입니다.

노동자의 눈에 습중훈은 진지하게 경청하고 자세히 물으며 주동적으로 관심하고 노동자의 생산안전을 무엇보다 앞자리에 놓는 노동자의 친구입니다.

기층간부의 눈에서 습중훈은 기층을 관심하고 사실을 치중하며 한마음으로 군중을 위해 행복을 도모하는 좋은 서기입니다.

습중훈은 일찍 습근평에게 폐부로부터 나오는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네가 얼마나 큰 관리로 있든지 인민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진심으로 백성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군중들과 연계를 가지며 군중에게 겸손하고 온화해야 한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2019年4月15日,習近平在重慶考察調研。這是在石柱土家族自治縣華溪村,習近平徒步前往農戶家中,實地了解脫貧攻堅工作進展和解決“兩不愁三保障”突出問題情況。

(사진4: 2019년 4월 15일, 습근평 주석이 중경을 고찰하고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습근평 주석은 부친의 부탁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인민을 위해 아름다운 생활을 지향하는 것은 우리의 분투목표이다"라는 마음과 "인민을 위해 봉사하고 담당해야 할 책임을 반드시 담당한다"라는 쟁쟁한 선서,  "나는 인민의 근무원이다"라는 초심의 승낙을 할 때까지 그리고 중국의 모든 빈곤구역를 다녀오고 중국의 마지막 4천만 빈곤인구를 2020년까지 전부 빈곤에서 탈퇴시킬 결심을 할 때까지......

인민의 이익을 둘러싸고 하나의 청사진을 마음속에 그렸습니다.

[한 마음으로 개혁을 촉진하고 하늘 아래의 처음이 된다.]

습중훈: "인민에게 이롭고 국가에 이롭기만 하면 우리는 곧 해야 합니다. 담이 더 커야 합니다."
습근평: "우리는 개혁과 개방의 정확한 방향을 견지하고 용감히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상관념의 장애물을 박차고 또 이익으로 응고된 울타리를 타파해야 합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習仲勳在廣東積極探索國有企業改革的路子,支持並推廣“清遠經驗”,擴大企業自主權,提高企業生産效率。圖為習仲勳考察企業,了解企業生産和改革情況。

(사진5: 습중훈이 광동에서 국유기업의 개혁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갑니다.  습중훈의 이름은 광동의 개혁과 개방 사업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습니다.
습중훈은 광동의 인민을 인솔하여 제일 먼저 개혁과 개방의 역사적 흐름에 뛰어들었습니다. 사상을 해방하고 경제특구를 창립했으며 광동이 개혁과 개방을 위해 "한걸음 선행"하고 마멸할 수 없는 공훈을 세웠습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2012年12月7日至11日,習近平在廣東省考察工作。這是習近平在深圳蓮花山公園向鄧小平銅像敬獻花籃。

(사진6: 2012년 12월 7일부터 11일까지 습근평 주석은 광동성을 고찰했습니다. 습근평 주석은 심천 연화산공원에서 등소평 동상에 꽃바구니를 진정했습니다."

중국공산당 18차 대표대회 이후 습근평 주석은 첫 지방 조사연구를 하면서 광동에 왔습니다. "현장에서 중국 개혁과 개방의 역사행정을 회고하고 개혁과 개방을 계속 앞으로 밀고나갔습니다."

2018년 10월, 습근평 주석은 재차 광동에 가서 세계에 선포했습니다."중국의 개혁과 개방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습근평 주석은 일련의 대 전략과 대 조치로 개혁과 개방 사업을 전례없는 깊이와 너비로 추진했습니다.

[한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고 군중노선을 견지한다.]

습중훈: "실사구시는 최대의 당성(黨性)입니다."
습근평: "실천은 실사구시를 견지하면 당과 나라를 흥성할 수 있으며 실사구시에 배치되면 당과 나라를 그릇치게 된다는 것을 거듭 증명했습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1985年11月,習仲勳在江西農村調查研究,訪貧問苦。

(사진7: 1985년 11월, 습중훈이 강서성 농촌에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자식들은 습중훈을 이렇게 회억했습니다. "저의 부친은 일생동안 실사구시를 견지했습니다. 절대로 덮어감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민군중의 이익에 관련되는 문제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명한 삼문협 수리중추공정은 만리 황하의 첫 땜이라고 불립니다. 공화국 창건 후 제1차 5개년 계획의 중점공정이며 또한 소련이 지원건설한 156개 중점 프로젝트의 하나입니다. 건설 초기, 의견을 수렴할 때 습중훈은 반대표를 넣었습니다. 공정 건설을 뒤로 미루고 적어도 흙탕과 모래 누적 문제를 해결한 후 다시 건설 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과학은 실제적이어야 하며 밝히지 않고 일정한 근거가 없으면 시험할 수 없고 또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2019年4月15日下午,習近平在石柱土家族自治縣中益鄉華溪村同村民代表、基層幹部、扶貧幹部、鄉村醫生等圍坐在一起,共話脫貧攻堅。

(사진8: 2019년 4월 15일 오후, 습근평 주석이 석주 투쟈족자치현에서 농민 대표, 기층간부, 빈곤구제 간부, 향촌 의사들과 한데 모여 앉아 빈곤탈퇴 공략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습근평 주석은 어릴 때부터 부친 습중훈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2012년, 그는 중앙당학교 춘계 학기 제2차 입학생들의 개학축제에서 연설하고 실사구시는 "시종 중국공산당인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근본적인 요구"라고 하면서 "중국 당의 기본사상 방법과 사업방법, 영도방법"이며 "당이 인민을 인솔하여 중국혁명과 건설, 개혁사업을 꾸준히 승리하도록 추진하는 중요한 법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를 객관적으로 요해하려면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며 깊이 실천하고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 합니다. 습근평 주석은 조사와 연구를 "결책의 전반 과정에 관철"할 것을 창도했으며 반드시 군중속에서 오고 군중속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한 조사와 연구는 마치 "열달동안의 잉태"와 같으며 결책은 바로 "하루 한시에 분만"하는 것과 같다고 형상적으로 비유했습니다.
"현위서기로 되었을 때 모든 마을을 돌아보고 현지(시위)서기도 모든 향과 진을 뛰어야 합니다. 성위서기로 있으면 꼭 모든 현과 시, 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현장에 깊이 들어가고 실사구시하며 현지의 자세한 자료를 장악하는 것은 시종 습근평 주석의 사업 습관이었습니다.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표대회 이래 습근평 주석의 족적은 중국의 동서남북에 찍혔습니다. 습근평 주석은 지역사회와 향촌, 기업, 학교, 군대에 모두 다녀왔고 민간을 방문하였으며 좋은 방법과 대책을 물었습니다.

[한마음으로 발전을 도모하고 아름다운 중국을 건설하다]

습중훈: "우리는 중국을 알아야 할 뿐만아니라 중국을 개조해야 합니다. 보다 좋고 아름다운 중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습근평: "청산녹수는 금산 은산입니다."

섬서에서 태어나 서북에서 장기적으로 사업하면서 습중훈은 서북지역의 산과 물에 아주 익숙합니다. 그는 서북의 건설과 발전에서 녹화의 중요성을 깊이 느꼈습니다.

습중훈은 정에 넘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림으로 서북의 자연환경을 개조해야 합니다. 황사의 땅을 임지로 만들고 나무가 없는 곳에 나무가 자라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습중훈의 소원이 현실로 변하고 있습니다. 서북지역에도 이르는 곳마다 녹음이 우거지고 기후가 좋은 청산녹수의 "국가삼림도시"가 있게 되었습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浙江余村“綠水青山就是金山銀山”碑

(사진9: 절강 여촌의 비석 "청산녹수는 바로 금산은산이다")

산과 물, 수림과 밭, 호수와 풀의 "생명공동체"가 초보적으로 규모를 갖췄습니다. 녹색발전 이념이 생산과 생활에 융합되고 또 경제발전과 생태개선이 좋은 상호 연동을 실현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생태환경보호의 과학적 이념은 이미 인심에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생태문명 건설이 힘있게 진행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중국 화폭의 전경이 서서히 열리고 있습니다.

습근평 주석은 바로 이 이념의 창도자이며 이 변혁의 추진자입니다.

圖片默認標題_fororder_習近平與父親習仲勳及家人的合影

(사진10: 습근평과 부친 습중훈 그리고 가족의 단체사진)

초심을 잊지 않아야 시작과 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친 세대를 빛나는 본보기로 삼아 인민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념을 산처럼 여기고 계속 분투해야 합니다.

부친 세대의 계주봉을 이어받아 궁극적으로 나라와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맞이해야 합니다.

번역/편집 jhl
korean@cri.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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