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正善
2019-10-24 16:31:25 출처:cri
편집:朱正善

징퍼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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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퍼족은 중국 남방의 소수민족이다. 2010년 제6차 전국인구보편조사에 따르면 징퍼족의 총 인구수는 14만 7828명으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서 인구수가 비교적 적은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징퍼족은 운남성 덕굉(덕굉)따이족징퍼족자치주 산간지역에 모여 살고 있으며 소수가 노강(怒江)리수족자치주와 미얀마 카친 주 접경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징퍼족은 자체의 민족 언어와 문자가 있다. 징퍼족의 언어는 한어티베트어계 티베트미얀마어족에 속하며  5개 방언은 각각 징퍼어 갈래와 미얀마어 갈래에 속한다. 문자는 징퍼문과 자이와문(齋瓦文) 두가지가 있으며 모두 라틴자모를 기초로 만든 표음문자이다.

징퍼족의 선조는 청해-티베트고원의 고대 저강(氐羌)인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징퍼,자이와, 러츠(勒赤),랑어(浪峨), 보어라(波拉) 등 5갈래로 나뉜다. 이 5갈래의 명칭은 그들의 자칭인 동시에 그들의 방언명칭이기도 하다. 그 중 징퍼는 갈래의 명칭인 동시에 이들 민족의 명칭이기도 하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본 민족의 염원에 따라 이들을 징퍼족이라고 통칭했다.

역사전설과 한문 사서의 기재에 따르면 고대로부터 징퍼족의 선민은 징퍼족들이 ‘목전성납붕’(目轉省臘崩)이라고 부르는 강장(康 藏)고원 남부의 산간지역에 거주했다. 그러다 당나라 때부터 횡단산맥을 따라 운남 서북부와 노강 서쪽지역으로 이주했다. 이 지역은 한나라 때에는 영창군(永昌郡)에 속했고 당나라 때에는 남소(南紹) 정권의 진서(鎭 西)절도사 관할 하에 있었다. 이 곳의 주민은 징퍼족 선민을 포함해 ‘심전만’(尋傎蠻)이라고 불렸다. 당시의 심전인들은 야산 속에서 수렵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남소와 대리(大理)정권 이후 원나라는 운남에 행성(行省)을 설립했으며 심전지역은 운남 행성 관할에 속했다. 생산의 발전과 더불어 징퍼족 각 부락은 점차 차산(茶山)과 리마(堻) 양대 부락연맹을 형성했으며 원시농촌공사화에서 파생된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세계(世 係)귀족산관(山官)이 나타나고 최초의 3개 계급인 관종(官種)과 백성, 노예로 분화되었다. 이들 계급간의 계선은 아주 엄해 백성은 관리가 될 수 없었고 노예는 주인의 성을 따랐으며 갖가지 노역에 종사하고 인신자유마저 박탈당했다. 15세기 초반에 명나라는 이 곳에서 토사(土司)제도를 실시해 리마, 차산 두 장관직을 설치했으며 징퍼족 산관을 장관으로 임명했다.

청나라 때 징퍼족 지역은 청나라 조정이 설치한 부주(府州)현 관할에 속했다. 16세기 후에는 많은 징퍼족들이 덕굉지역에 이주했다. 그들은 한족과 따이족의 선진적인 생산기술과 봉건경제의 영향하에 밭갈이 농업에 종사하기 시작했으며 비교적 선진적인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게 됐다. 그 후에는 논 농사를 배워 생산력을 한층 제고했으며 노예들이 부단히 항쟁하고 도주하는데다 한족과 따이족 봉건제도의 영향을 받아 노예제도가 빠르게 몰락했다. 징퍼족은 이처럼 봉건영주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으나 완정한 영주제를 형성하지 못하고 사회경제의 다구도 상태를 유지하는 봉건사회의 초반에 발을 들여놓기만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전인 1940년대에 징퍼족 사회에는 이미 징퍼족 총 인구의 1%를 차지하는 지주와 2%를 차지하는 부농이 생겨 그들이 20%에서 30%의 논과 20%의 경작소를 차지하고 80%이상의 농가는 논과 경작소, 농기구가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후 당과 국가는 징퍼족 지역에서 민족지역자치를 실시했으며 사회주의에로 직접 과도하는 민주개혁을 단행해 산관제도를 철폐하고 징퍼족인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도록 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징퍼족 인민들은 조국의 통일을 수호하기 위해 영용한 투쟁을 진행했으며 조국의 신성한 영토를 수호하고 서남변경을 건설하는데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1857년 유명한 마가리 사건에서 징퍼족인민들이 중국정보를 절취한 영국간첩 마가리를 암살하고 영국군관 브라운이 인솔한 침략군을 막아 침략자의 기염을 꺾어놓았다. 1989년에 중영 양국이 롱천 국경을 탐사할 때에도 징퍼족 산관인 조낙동(早樂東)이 군중들의 지지 하에 중국영토를 침점하려는 영제국주의의 야심을 짓부셨다. 1910년 영국 침략군 2000여명이 중국 징퍼족이 집중 거주한 지역에 쳐들어오자 징피족인들은 영용히 반항해 운남에서 반침략 운동을 성세호대히 일으켰으며 ‘중국국경 보호회’를 조직해 영국정부가 이 지역이 중국의 영토임을 승인하도록 했다.

항일전쟁시기에도 징퍼족은 항일유격대에 적극 참가해 장도와 도끼, 포와 총으로 운남 서부에 쳐들어온 일본침략군에 영용히 저항해 조국 보위에 일익을 담당했다.

1950년 징퍼족 지역은 해방을 맞이했으며 1951년에 민주연립정부를 세우고 1953년 7월 덕굉따이족징퍼족자치주 인민정부가 정식 설립되었다. 1956년 5월, 덕굉따이족징퍼족자치구는  따이족징퍼족 자치주로 개명했다. 지금 전국인민대표대회와 각급 인민대표대회 대표들 중에는 징퍼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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