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仙玉
2021-05-07 18:02:17 출처:cri
편집:李仙玉

[오피니언] 샤오강 정신은 개혁의 원천

[오피니언] 샤오강 정신은 개혁의 원천_fororder_6-小崗精神

(사진설명: 오늘날의 샤오강 마을 일각)

2021년은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백 년 동안 공산당은 외적인 억압과 내적인 혼란 속에서 인민이 주인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창건해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경제발전수준이 뒤떨어지고 국력이 약한 중국을 이끌어 경제가 빠른 발전을 가져오고 13억 국민의 생활수준이 대폭 향상된 오늘날의 국면을 개척했다.

중국이 짧은 40여 년간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국력의 증대를 이루는 기적을 창조한 데는 개혁개방의 역할이 지대하며 그 개혁의 원천을 보여주는 정신은 바로 샤오강(小崗) 정신이다. 중국의 개혁은 농촌에서 먼저 시작됐고 중국의 농촌 개혁은 1987년 안후이(安徽)성 펑양(鳳陽)현 샤오시(小溪) 진 샤오강 마을에서 서서히 막을 올렸다.

1978년 펑양현에는 백 년 중에도 보기 드문 가뭄이 들어 쌀 몇 톨도 거두지 못했으며 많은 촌민들이 살길을 찾아 뿔뿔이 고향을 떠났다. 가난하면 변화를 시도하고 어려우면 진보를 꾀하기 마련이다. 그 해 11월 24일, 샤오강 마을의 간부들은 기존의 대 규모 집단농장인 인민공사(人民公社)의 전통적인 체제를 전면적인 청부제로 바꾸어 집단 소유의 토지 경작권을 촌민들에게 장기적으로 임대해주어 가구별로 농사를 짓게 하기로 논의, 결정했다.

마을 간부와 촌민들은 합의를 본 후 계약서에 일일이 서명하고 날인했다. 계약서에는 “우리는 경작지를 가구별로 도급맡기로 하며 계약서에는 가구마다 가장이 서명하고 날인한다. 향후 성공할 경우, 가구마다 가구별 전 년 상납물량과 공출미 물량의 달성을 보장하고 더는 나라에 돈과 식량을 요구하지 않는다. 향후 성공하지 못할 경우, 우리 간부들은 감옥살이를 하고 목을 벤다 해도 달갑게 받을 것이다. 그리고 사원들도 간부의 아이들을 18살까지 키워줄 것을 담보한다”는 내용이 손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 때 샤오강 마을의 간부들은 이런 개혁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고 온 세상의 비난을 받을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목숨을 버릴 각오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개혁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용감한 이 행동이 샤오강 마을은 물론이고 몇 억에 달하는 중국 전역 촌민들의 운명을 바꾸었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중국 개혁의 서막을 알리는 이 계약서는 오늘날 중국혁명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부제를 시행한 이듬해 샤오강 마을의 1년 소출은 1955년부터 1970년까지 15년간 소출의 총화와 맞먹었고 일인당 소득은 그 전해에 비해 18배 이상 증가되었다. 샤오강 마을의 성공적인 개혁은 중앙의 지지를 받았고 안후이성과 중국 전역에서 보급되었다. 농촌 개혁의 발원지인 샤오강 마을은 사서에 기록되었으며, 기존의 규칙을 돌파하고 용감하게 개척하며 개혁과 혁신을 보여주는 샤오강 정신이 형성되었다.

샤오강 정신의 주요 내용은 스스로의 힘으로 분발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불발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장대해졌고, 스스로의 힘으로 분발했기 때문에 샤오강 마을은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쓸 돈도 없던” 상황에 종지부를 찍고 경제사회의 거대한 발전과 진보를 이룩했으며 중국 개혁의 원천지가 되었다.

샤오강 정신의 실질은 사실에 입각하는 실사구시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실사구시의 사상을 따르면 혁명과 건설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실사구시에 위배되는 사상을 따르면 혁명과 건설에서 좌절을 겪었거나 심지어 실패하기도 했다. 샤오강 마을에서 개혁을 시작한 1978년은 “사회주의는 바로 공유제이고, 사회주의는 바로 공영화 수준이 높은 대 규모 인민공사다”라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관념과 모델이 성행하는 때였다. 공유제에 얽매인 형식적 사회주의 길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사실을 파악하고 속박에서 벗어나 혁신을 가져올 것인가는 당시의 실정이었으며 샤오강 마을은 이런 사실에 입각해 대담하게 청부제를 시행했다. 이 것이 바로 사실을 존중하고 실사구시적인 큰 지혜인 것이다.

대담하고 파격적인 혁신은 샤오강 정신의 핵심이다. 1978년에만 해도 경작지의 가구 별 도급은 자본주의행위로 보여지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1960년대에 청부제와 비슷한 농업생산 책임제가 시행되었으나 거대한 반대에 부딪쳐 개혁은 실패했고 개혁을 추진하던 사람들도 그 화를 면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농업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웬만한 의지가 없으면 힘든 일이었다. 개혁이 가져올 엄청난 반향과 그로 인한 심각한 결과의 가능성을 예상했기 때문에 샤오강 마을의 간부들은 “목숨을 내건 생사의 계약서”를 맺고 시작한 것이다. 앞에 그 어떤 가시밭길이 펼쳐져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인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감히 걷기 시작한 것이다.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한 후 40 여 년이 흘러 오늘날에 개혁개방의 첫 마을 샤오강을 돌아봐도 샤오강 마을의 이야기는 여전히 새롭고, 우리는 여전히 국민들의 거대한 역량에 감탄한다. 샤오강 정신은 농업개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발전과 사회진보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있게 밀고 전진한다. 샤오강 정신은 개혁의 길에서 영원한 원동력이자 시대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보여주는 혁신의 정신이다.

출처: 조선어부 논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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