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둥베이(東北) 3성의 문호인 다롄(大連)은 뚜렷한 사계절을 지닌 해양성 기후로 내 고향인 부산과 아주 유사해서 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최근 다롄시 명예시민이자 다롄 한국인(상)회 명예회장인 최용수 씨가 인터뷰에서 본인과 다롄의 깊은 인연을 돌이켜보았다.
이제 팔순이 넘은 최용수 씨가 이미 다롄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다. 그는 "다롄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다!"라고 말했다.
1994년 8월, 최용수 씨는 다롄에서 젠창신발소재유한회사(建昌鞋材有限公司)를 설립했다.
기업 설립 초기에는 다양한 문제를 자주 겪었지만, 최용수 씨는 다롄시 간징쯔구(甘井子區) 상무국이 결정적인 순간에 지도와 도움을 베푼 점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최용수 씨의 기업은 다롄에서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이 해변 도시에 정착했고, 다롄의 기회를 더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해, 다롄에 와서 둘러보고 활력이 가득한 이 도시에 투자하도록 초대했다.
2006년, '다롄시 명예시민' 칭호를 받은 최용수 씨(왼쪽) [사진: 다롄시 외사판공실 제공]
이후 20여 년 기간 동안 그는 150여 명의 한국 기업가들이 다롄시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투자설명회에 참여하도록 조직했으며, 부산시 정부, 상공회의소에 적극적으로 연락해 다롄시 기업과의 좌담회를 추진했다. 한국 세운철강, 태원기계 등 한국 프로젝트가 바로 그의 소개로 다롄에 정착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그는 다롄에 거주하는 한국 기업가와 자녀들이 겪게 되는 교육 문제에 유의하게 되었다. 2001년 그는 다롄 한국인(상)회 회장 재임 시 다롄 한국 국제학교를 설립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이를 통해 문화의 장벽을 없애고 민간 문화 교류를 추진하고자 했다.
"학교 준비 과정에서 다롄시 인민정부가 지도와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며 기억을 되짚었다.
다롄 한국 국제학교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는 최용수 씨 [사진: 다롄시 외사판공실 제공]
다롄이 대외 개방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최용수 씨는 목격 증인이자 참여자였다. 그는 다롄이 중국 둥베이 3성의 문호라며, "특히 항구 도시로서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라는 역할을 늘 해오면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최용수 씨는 '다롄시 명예시민'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이 되었다. 그는 "개인적인 영예일 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자랑"이라며, "중한 지방 간의 우호 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이므로, 명예시민으로서 더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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